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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을 보다


2016년이 시작되면서 노트에 올 계획을 적어 내려갔다. 여러 개의 계획 중 하나가 일기쓰기다. 작년에 키워드로 하루를 정리해보고자 마음먹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평소 내가 많은 단어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순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한 단어로 하루를 요약하고 그에 맞게 하루를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쉽게 접근해보자는 마음으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일기의 내용이 짧아도 좋고, 그날을 요약하지 않아도 좋다. 그날의 내 마음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다행히 오늘까지.. 그 계획은 잘 지켜지고 있다. 어떤 날은 낮에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밤에 쓰기도 하지만 뭔가를 적는다는 것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사실이 참 좋다. 일기를 쓰면서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시집들을 만나보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요즈음 나는 시를 읽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시어가 나타내는 함축적 의미를 알지는 못하더라도 가슴으로 읽고 느끼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니까. 이번에 만난 시집은 고두현 작가의 책이다. 작가의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고 고개를 갸웃했는데, “사랑 시를 쓰다”에서 만난 작가였다. ‘사랑, 시를 쓰다’에선 국내외 시와 명문장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고두현 작가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가보았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시로 담는 것도 좋지만 평소 느끼는 다양한 삶의 시선들도 좋다. 혼자 먹는 저녁 곰칫국 / 밥 말아 먹다 / 먼 바다 물소리 듣는데 저녁상 가득 채우는 / 달빛이 봉긋해라 가난한 밥상에도 바다는 찰랑대고 / 모자라는 그릇 자리 둥근 달이 채워 주던 / 그 밤의 숟가락 소리 달그락 거리며 쓰다듬던 / 곳간의 밑바닥 소리 이제는 잔가시 골라 건넬 / 어머니도 없구나 (23) 바래길 첫사랑 깊고 푸른 바닷 속 /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 몰래 건네주고 / 막 돌아오는 길인가 봐 얼굴 저렇게 / 단감 빛인 걸 보면 (41) 별을 위한 연가 한 사람이 평생 / 가꾼 숲을 / 누군가 일순간에 / 베어 버리고 한 은하가 잠깐 / 밝힌 빛을 / 누군가 일생 동안 / 바라보며 산다 (59) 점점 혼자 먹는 식사 자리가 많아질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나와 남편 둘만 남게 되겠지? 혼자 먹는 저녁은 이런 풍경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서 씁쓸하면서도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마음에 담았다. 첫사랑에 대한 시를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리고 생각했다. 얼굴이 단감 빛이면... 어떤 생각이라는 건지. 보통은 사과처럼 붉다고 표현하지 않았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볼이 단감 빛이라면... 그 사랑 오래 지속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짧지만 예쁜 시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웠을지. 역시 시는 아무나 쓰는 건 아닌 것 같네. 쓰는 건 어려워도 가끔은 읽어줘야지.
아름다운 언어와 미감 있는 운율로 마음의 고향을 노래하다 10년 동안 기다려 온 ‘고두현의 그리움’을 만나는 시간! 한국 서정시의 적자이자 대중들에겐 시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시 전도사’로도 이름 높은 고두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달의 뒷면을 보다 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절묘한 균형미를 넉넉한 여백으로 표현한 새로운 감동이라는 평가를 받은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하우스, 2005) 이후 10년 만의 신작이다. 고두현 시인은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시첩-남해 가는 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늦게 온 소포」(민음사, 2000)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출간하며 맑은 언어,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마음속의 순수한 원형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왔다. 늦게 온 소포 는 ‘맑음을 빚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훤히 비치는 거울 같은 시집’으로 평가받은 스테디셀러 시집이고,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역시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경남 남해의 풍경과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내면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현대적 감성으로 향수를 전달하는 시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외 시 읽는 CEO , 옛 시 읽는 CEO 등의 저서와 활발한 강연을 통해 시의 저변을 넓히는 활동에도 앞장서 왔다. 달의 뒷면을 보다 는 앞선 시집에서 유지해 온 그리움의 정조를 유지하면서도 사랑의 밀어는 더 은밀하고 농염하게, 세태를 직시하는 언어는 더 곧고 매섭게 표현했다. 4부, 총 69편의 시로 구성된 가운데 2부에서는 연애 시가, 3부에서는 세태를 향한 시선을 다룬 시가 돋보인다. 고두현 시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남해 사랑은 ‘남해 시’ 연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설은 이승하 시인이 맡았다. 작품을 깊고 넓게 읽는 해설자의 역할을 성실하게 이행하면서도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동료이자 오랜 독자로서의 다정함을 숨기지 않아 시집의 체온을 한껏 올렸다.

시인의 말

1부 천년을 하루같이
초행
천년을 하루같이
달의 뒷면을 보다
너를 새기다
수련(睡蓮)
동전을 줍다
혼자 먹는 저녁
거룩한 상처
뒤꿈치
팔꿈치
봄날 밥상
집 우(宇) 집 주(宙)
아버지의 빈 밥상
못 다 쓴 연보
미완의 귀향
푸른 흉터
어머니 핸드폰

2부 쌍계사 십 리 벚꽃
바래길 첫사랑
독일마을에 가거든
그 숲에 집 한 채 있네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부르는 까닭
노도(櫓島)의 봄
그 먼 나라의 피서법
풍천(風川)에는 장어가 없다
장어의 일생
다시 풍천(風川)을 위하여
쌍계사 십 리 벚꽃 1
쌍계사 십 리 벚꽃 2
별을 위한 연가
오늘 같은 저녁은 왜
황금빛 가지
저무는 우시장
진경
몰입
창세

3부 삼포 로터리
삼포 로터리
성(聖)수요일의 참회
김밥천국
직립
빗장비
입춘대설(立春大雪)
문자 메시지
마우스에게
아버지가 컴맹인 이유
네토피아 가상 제국
절묘한 사이
하늘에 쓰다
합궁
자기 앞의 생
너를 품다
뒷짐
하룻밤에 아홉 강을 건너다
월영지에서 퇴계와 함께
보리수염은 뾰족하고 보리거웃은 둥글다

4부 죽녹원 대숲
첫눈
바람난 처녀
못자리
죽녹원 대숲
이 비 그치면
정포리 우물마을
백양나무 숲에 들어
잠언
거룩한 구멍
달빛, 창, 은행나무
두 개의 칫솔
아주 특별한 기별
운석의 고향
와우산(臥牛山) 길
뿌리가 뿌리에게

작품 해설/이승하
남해 앞바다의 물결 소리여, 이 땅의 서정 시인이여